대학생 쩡딱구리
[러시아 소설] 목 위의 안나 Анна на шее 본문
요즘 러시아문학텍스트 수업을 들으면서 러시아 문학을 여럿 접하고 있다. 세 번째 작품으로 방금 예습을 끝낸 작품이 바로 러시아의 대문호 안톤 체호프(Антон Чехов)의 단편 소설 중 하나, 목 위의 안나(Анна на шее)이다. 작품을 읽으면서 '갈매기'도 그렇고 체호프는 참 씁쓸한? 뒷맛이 아린 작품을 쓰는 데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부터는 간단한 책 소개!
1. 책 제목의 의미: 목 위의 안나
제목인 목 위의 안나는 두 가지의 중의적 의미를 가진다. 작중에서 중요한 소재인 훈장의 이름이 안나이며, 주인공의 이름도 안나이다. 두 가지 의미를 살펴보자면 이렇다.
성 안나 훈장(Орден Святой Анны)
성 안나 훈장은 1742년에 러시아에서 제정된 훈장으로, (민간) 공무에서의 공훈을 치하하는 의미에서 주었다. 성 안나 훈장은 1~4급으로 나뉘는데 그중 2급은 목에 거는 훈장이었다. 작품 속에서 안나의 남편인 모데스트는 1급 훈장을 받고 2급 훈장을 원하는데, 이후 안나 덕분에 2급 훈장을 목에 걸게 된다.
목 위에 앉아 있다(Сидеть на шее)
러시아에서 '목 위에 앉아 있다(Сидеть на шее)'라는 말은 누군가에게 얹혀살며 힘겨운 짐을 지움을 뜻하는 관용어이다. 작품에서 공작이 안나의 남편 모데스트에게 비아냥대는 장면이 있다.
이제 자네에겐 세 안나가 있구만 그래. 하나는 단춧구멍에. 나머지 둘은 목 위에 있지.
모데스트의 단춧구멍에 있는 안나는 1급 훈장을, 목 위에 있는 두 안나는 모데스트의 두 아내(둘 다 이름이 안나)를 의미한다. 공작은 모데스트가 두 명의 아내를 부양하고 있음을 비꼰 것이다.
2. 주요 등장인물
- 안나(Анна/Аня): 작중의 주인공으로 아름다운 18살의 숙녀. 사별 후 과음을 일삼는 아버지 대신 집안을 도울 돈을 벌기 위해 하급 관리 모데스트와 결혼해 힘든 결혼 생활을 한다. 남편은 두렵고 집안은 지루한 그녀의 삶이 무도회로 인해 바뀌게 된다. (아버지의 이름을 보아 부칭은 Петровна(페트로브나)로 추측.)
- 모데스트 알렉시예비치Модест Алексеевич): 52살의 하급 관리로 안나의 남편. 1급 성 안나 훈장을 받고 2급을 탐내거나 무도회 날 다른 사람들에게 아내인 안나를 통해 자신의 기를 살리는 등 물질적이고 계산적인 성격.
- 표트르 리온찌예비치(Пётр Леонтьевич) : 안나의 아버지. 아내와의 사별 이후 과음을 일삼는다. 결말부에 집안이 어려워졌는데도 여전히 과음을 일삼으며, 무도회 이후 달라진 딸 안나에게도 외면당한다.
- 공작(Князь): 모데스트에게 훈장을 하사하며 '세 안나' 이야기를 하며 비꼰다. 무도회에서 아름다운 안나의 모습에 감탄한다.
이 외에도 모데스트의 또다른 아내 안나, 안나의 동생들, 부자 아르띠노프 등 많은 인물들이 나오지만 비중 있게 다루어지는 인물들은 이 네 명이라고 생각한다.
3. 아주 간단한 줄거리
원어 소설을 요약한 내용이기에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주 간단하게, 주인공 안나의 시점에서만 요약한 줄거리입니다. 삭제된 내용이 많습니다!
1부
18살 아름다운 아가씨인 안나는 사별 이후 의지를 잃고 과음을 일삼는 아버지 표트르와 어린 동생들 대신 돈을 벌고자 52살 하급 관리 모데스트와 결혼한다. 그러나 안나는 돈은 받지 못하고 비싼 장식품을 받았고 심지어 동료들을 대하는 반만큼도 아내를 대하지 않고 결혼 생활과 아내에 대한 불평만 늘어놓는 남편을 두려워하고 결혼 생활을 지루해한다.
2부: 무도회
12월 말에 겨울 자선 무도회 초대장을 받은 모데스트는 동료들의 부인들과 협의해 새 드레스를 사 입으라고 안나에게 돈을 준다. 모데스트와 안나가 무도회에 들어섰고, 지치지 않고 열정적으로 춤을 추는 안나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감탄하고, 안나는 무도회의 주인공이 된다. 춤을 추는 안나의 모습이 마음에 든 공작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돈을 모으는 자선회를 운영하는 자신의 아내에게 데려가고, 자선회에 참가한 안나는 돈을 상당히 많이 모으고 유명한 부자인 아르띠노프의 마음에 들게 된다. 안나는 음악, 춤, 자신에게 반한 사람들로 화려한 삶을 만들었음를 깨닫고 쾌감을 느낀다.
3부: 무도회 이후. 결말
아침에 집에 돌아온 후 두 시간만에 눈을 뜬 안나. 아르띠노프가, 그 다음으로는 공작이 공식적으로 안나의 집을 방문했다. 안나는 자신에게 비굴할 정도로 정중히 말하는 남편의 태도를 보고 자신의 인생이 바뀌었다 느꼈다. 더 이상 남편과 말하고 싶지 않았던 안나는 남편을 내쫓은 후 바쁜 사교계의 하루하루를 보낸다. 한편 안나의 집은 형편이 안 좋아져 가족들은 거리로 나가고, 아버지 표트르는 아르띠노프의 마차에 있던 안나를 보고 그녀를 붙잡지만 안나는 그런 아버지를 보지 못하고 동생들이 그러지 말라며 아버지를 붙잡는다.
4. 감상평
읽는 내내 상당히 씁쓸했던 거 같다. 안나를 제외한 대부분의 인물이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때가 탄 인물들인데 마지막엔 안나도 거기에 완전히 물들고 말았다는 점도 그렇고. 늘 남편에게, 다른 부인들에게 눌려있고 가난했던 안나가 부유하고 자유로워진 건 안나에게는 해피엔딩이긴 하지만 안나가 나이가 들어, 또는 안나보다 더 대단한 여성이 갑자기 등장해 안나의 그 아름다움과 재능이 의미를 잃는다면 지금 안나에게 남아있는 사교계의 영광은 모두 물거품이 되지 않을까 생각도 든다. 그렇다고 가족을 외면한 안나가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집안이 기울어져 가는데도 과음만 일삼는 표트르는 처음부터 끝까지 비호감이었다. 모데스트보다 더 싫었다. 물론 선택은 안나가 했지만 안나의 힘든 결혼생활의 만악의 근원이 표트르 아니었을까.
그동안 내가 배운 단편 작품들보다 문장과 단어가 간단하고 쉬워 노어를 전공하고 있거나 배우는 중이라면 원어로 읽어도 나쁘지 않다. 내용도 꼬는 것이 없고 시간 순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작품일 것 같다. 그만큼 쉽고 재미있고 흥미로운, 그렇지만 씁쓸한 작품이었다. 얼마 안 되는 분량의 소설인데도 이런 많은 생각을 던져주는 체호프는 정말 대단한 작가라고 생각한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이라는 단편집에서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체호프의 단편들이 실려있다고 하는데, 그 단편을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 위의 안나는 1954년에 영화로도 나왔다. 영화에는 안나의 감정선을 더 섬세하게 살려내는 디테일이 많다고 많다고 하니 오늘 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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